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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적의 태권브이 초합금 재료를 완성하는 그날까지~! 달려~!
잡동사니

어쨌든 난 꼰대다. 재료를 개발하는...

by 쫄지 말고 자신 있게 2023.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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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개발자로 이제 겨우 20년 정도 살아왔다. 처음에는 일본, 미국, 유럽 등 선진 업체들의 제품을 카피하는 것이 목표였다. 사실은 그 카피도 잘하지 못했다. 이미 철 지난 제품의 제품의 제조 recipe를 로열티를 주고 사 와서 그것을 바탕으로 개발을 진행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핵심 소재 개발은 시도조차 못 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더 힘들게 했던건 꼰대들 때문에 힘들었다. 현재는 나도 꼰대 반열에 들었지만..... ㅋ
그 당시 꼰대들.. 이제는 곧 은퇴를 바라고 있을 어르신들... 이 항상 하던 말이....
"이러이러해서 우리는 못합니다."
이런 말을 부끄럽지도 않은지 그냥 매번 하더라구...
같은 소재이고 같은 원료를 사용해서 합성한 제품이고 성능이 유사하거나 더 좋은 국내 업체 제품이 있더라도 절대 신뢰하지 않았고, 무조건 해외 제품으로 특히 일본 제품을 좋아했다.

이런 분위기를 바꾼 건 반도체와 LCD 같은 첨단 산업이었다. 미국, 일본 업체와 치열한 경쟁을 하던 시기에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체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산화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말이 국산화 추진이지 실상은 그네들의 원가절감 전략이지만, 어쨌든 국내 업체들에게 기회가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비로 시작했고 이 분위기가 재료로 이어졌다.
장비는 초기 투자를 위한 단발성 지출이지만, 재료는 그 공장이 운영되는 한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지출이다. 그리고 장비는 카피가 쉬운 편이다. 역설계와 시행착오를 통해서 단기간에 카피가 가능하다. 하지만 재료는 상황이 다르다. 재료는 원료의 처리, 합성 방식, 그리고 각 단계 단계 마다의 세세한 공정 조건 등을 조절하고 관리해야 원하는 물성의 재료를 얻을 수 있다. 그 이후 고객이 필요로 하는 특성을 모두 만족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페인트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페인트는 원료와 그에 맞는 색상을 조합해야 한다. 고객이 원하는 색상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그건 그냥 냄새나는 기름일 뿐이다.
어쨌든 우리는 처음에는 가격 협상용 카드였다. 실제로 고객들은 제품을 구매하지 않았다. 국산화한다는 명목으로 해외업체들의 납품가를 깎았다. 뭐... 그래도 나라를 위해 조금이나마 역할을 했다고 자위해 보지만, 실적이 없는 난 인사평가가 늘 개판이었다. 그래서 동료들은 돈 되는 쉬운 아이템으로만 빠져나갔고, 나는 몇 명의 후배들과 쓸쓸히 욕을 먹어가며 엄청난 업무와 시행착오를 겪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5년쯤 지났을까? 이제 뭔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 제품이 해외업체보다 좋다고 구매하겠단다. 처음에 드럼 하나(200kg)로 시작한 납품이 6개월 후 월 20톤, 1년 후 월 1,000톤으로 늘어났다. 대만, 중국으로 수출도 했다. 4년 만에 누적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재료로서 단일 제품 누적 매출 1조는 큰 금액이다. 재료는 모든 산업의 기초이기에 소비자 손에 들어가는 제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무리 많이 잡아야 5~7% 이다. 그럼 역산해 보면 재료 1조 매출은 소비자가 기준으로 무려 20조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래서 화학회사들은 매출 1000억 원 올리는 것이 완제품 제작회사들이 1조 원 매출을 내는 것과 거의 유사하다고 봐도 된다. 화학회사로 매출 1조는 말 그대로 이젠 급이 다른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LG화학을 평가해 보면 삼성전자보다 더 가치 있는 회사이지 않을까?

이젠 이런 성과를 만들어 냈는데..... 그런데 이제 후배들이 문제다. 가방끈이 다 길다. 기본이 석사다. 그런데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뭔가를 해 봤다고 하는데 기본적인 소양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나노소재, 복합소재, 고분자 등등 뭔가를 많이 했다. 하지만, 약간만 다른 소재를 접하면 바보가 된다. 다 똑똑한 친구들인데.....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자기가 해본 것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커서 다른 것에 대해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음.. 지도교수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건지.... 플랜 B 소재에 대해 대응이 안된다. 게다가 IR, GC, GPC, NMR 등 기본적인 분석 결과의 해석 능력도 떨어진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학부, 대학원 시절 교과서를 통해 배운 내용은 활용할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이젠 나는 신입사원이 오면 유기화학, 고분자 화학, 기기분석, 고분자 물리화학을 무조건 새로 공부시키기로 했다. 유기화학, 고분자 화학은 약 3개월, 기기분석과 고분자 물리화학은 이후 3개월, 총 6개월을 공부시키니까 이제야 말이 통한다. 결론은 기본이 약한 것이었다. 이후 후배들은 쭉쭉 성장하고 있다. 

난 뭐 다른 거 많이 바라지 않는다. 신소재학과, 첨단소재학과, 이러 거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 학과나 전공 이름 이쁘게 지어 놓으면 신입생이 많이 올 거라 생각해서 그런 거 같은데... 뭐  다 좋다... 기본은 좀 제대로 교육하길 바란다. 기본 없이 수박 겉핥기 식으로 모래 위에 집을 지은 듯한 인재는 필요 없다.

아! 오늘 날씨도 꿀꿀한데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스쳐간다.
어쨌든 나도 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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